사는 게 어렵냐 죽는 게 어렵냐?

4. 기술

itisyuwol 2024. 11. 5. 00:28

경산, 갑못. 24년 11월 2일


기술

 

숨 쉬는 방법을 배운다. 출산을 준비하는 산모라서가 아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가득 채우는 들숨, 마음을 진정시키려 길게 뱉어내는 날숨, 편안하게 잠드는 긴 날숨, 집중력 향상을 위한 여린 호흡 , 잘 뛰기 위한 박자 호흡,  긴장될 때 차분해지는 상자 호흡을 배운다.

사실 수 십년 씩 그것도 매일, 수 만번의 숨을 쉬며 살아가니까, 누구나 숨쉬기의 달통이 돼 있어야  합당하다.  그러나 사람은 어째서인지  잠들기 위해,  안정감을 얻기 위해,  건강해지기 위해 숨 쉬는 법을 기술이라며  배운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걷는 법, 뛰는 법, 살 빼기, 살찌기,  하체 훈련, 상체 훈련, 머리카락 나기. 점 빼기, 하얗게 되기, 몸에 대한 것만 수십 가지를 넘어 배운다.

 

평생동안 대화하며 지냈지만, 희한하게도 대화의 기술을 배운다. 발음, 타인의 말을 듣기, 내 의견을 말하는 요령, 노래를 배우고, 기계 조작을 배우며 심리 상태뿐 아니라 전생과 후생까지 배우는 사람이 있다. 간혹, 신선이 되고 싶다며 해괴한 득도술을 배우는 사람마저도 있다.

 

사는 것에 기술 아닌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아기가  태어날 때에도 기술을 조합해 받아주어야 한다. 그렇게 태어나서인지  인생의 끝에서도 기술은 필요하다.  노령이 겪는 막바지 고통은 몇 달, 몇 년인지 알 수 없다. 저승 가는 길에 고생 없이 죽으려면 늙는 기술조차 익혀야 한다.

통증 없이 사는 법,  건강하게 늙는 법,  치매 없이 살다 가는 방법.

그래서 인생은, 어쩌면 인생은, 아니 사실 인생의 불행은,

인생의 불행은 기술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사람을 불행하도록 기술을 사용하고
인간은 불행의 위치에서 행복한 것을 찾아내며, 만들며, 이기는 기술을 습득한다. 
행복도, 불행도 아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불행도 기술일 수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선택한 마음의 불행은,
불행이란 놈이 사용하는, 탁월한 작품일 수 있다.

불행을 선택하면,  불행을 믿으면, 그 순간부터
불행도 기술이다. 불행의 기술, 그리고 잃어가는 행복의 기술,

 


사실, 그 모든 기술은 이 한 문장에 들어 있다.

 

"사는 것이 기술이다."

 

사는 게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만 가지 기술 속에서 사는 기술을 배워야 함을 깨닫는다.

바다에 사느냐, 뭍에 사느냐, 골에 사느냐, 어떤 직업과 인생관으로 사느냐를 결정해야 할 삶이지만, 에어컨 설치할 때 기술자를 부르고, 건물을 짓고 부수고 옮길 때에도 기술자를 찾고 부르듯,

 

사는 기술, 행복한 기술에 능숙한 사람을 찾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성실하고  전문 기술의 직업을 가졌지만 불운한 사람이 있다.  재산과 권력, 쾌락을 누려  행복해 보이지만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불운한 뛰어남도 닮고 싶지 않고, 불의한 쾌락도 닮고 싶지 않다.  

 

사는 것은 기술이다.
그냥 살면 살아진다?

그냥 사는 건 그냥 사는 것일 뿐이다.

 

일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일하고, 쉬는 것도 기술적으로 쉰다.

 

부족 사회에서도 그냥 살 수는 없었다. 타 부족과의 전쟁, 벌레, 못 먹는 열매, 더위와 추위,  사건 사고를 재판하는 판단력, 모든이가 지켜야 할 규칙, 규칙이 모여 이루어진 법, 사람을 모으기와 흩어내기, 가르치기, 이해시키기, 그 모든 필요에서 공동체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기술적으로 다듬어 왔다.

사는 기술을 배우지 않은 민족과 개인은 살아남지 못했다.

 

사는 게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기술적으로 사는지 떠올려 보게 된다.

그가 스무스하게 잘 사는 것 같으면, 성격 때문이 아니라 스무스하게 살 줄 아는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성격만 가지고 잘 살 수 있을까? 

직업의 기술이 아니라, 사는 것이 기술이라면,  어떤 삶의 모양으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을까?


혹시라도, 고생 없이 이루어지는 기술이 있을까?
없다.

삶의 기술은 수천 가지일 테지만, 중요한 기술이라면 결국, 남들의 말과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 자신이 되는 것이다.

 

많은 종류의 꽃이 있고,  한 종류의 꽃도 흔희 만발한다. 비슷하게 생긴 많은 고양이가 있지만  각각 개성이 다르다. 자기 자신이지 못한  한 포기의 꽃과 동물은 지금까지 없다.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고,  비견되는 남의 인생에 휘둘린다. 여러 모양의 자기 개성인 세상에 휘둘린다.

 

삶은 기술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사는 게 기술이다. 
사는 게 기술이다.
하지만 기술의 바닥 면은  '자기 자신' 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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