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어렵냐 죽는 게 어렵냐?

43. 즐거움은 대화에 속해 있다 _(1)

itisyuwol 2025. 5. 19. 17:55

경산 삼성현 문화 역사 공원의 패랭이

 

 

인간의 즐거움은 "대화"에 속해 있다.

축구, 야구는 상대 팀이 있다. 상대 팀은 적의 역할을 한다.
인생이 어려운 이유는 누구와 무엇이 적인지 구분되지 않는 일상 때문이다. 아군과 적군이 같은 옷을 입고 섞인 불분명함이 인간의 전장이다. 쉽고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인생이기에 살아감은 불분명한만큼 어렵다. 그러나 그래서 흥미롭다.

 

불완전한 삶의 본질 위에서 인간은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불협화음 같은 마음, 언발란스한 느낌, 채워지지 못한 감정을 말을 통해, 곧 대화를 통해 정리해냄으로써 안정과 만족, 즐거움의 상태를 회복한다.

그런데 평범하게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겠지만, 진짜 대화의 수준은 막론하고 즐거운 대화이다.

진짜 대화는 즐거운 대화이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는 대화라는 신비한 행복 수단이 있다. 이 행복 수단은 행복뿐 아니라 성장과 창조의 수단이기도 하다. 즉, 말이 없으면 어떤 인생도 즐거울 수 없고 성장할 수 없다. 적확하게 말해서,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대화에 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대화에 있다.

간단한 예로 축구 팬들에게 시합 전, 시합 중에, 시합 후에 축구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들에게 즐거움이 있을까? 인생의 모든 영역에는 대화라는 신비가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대화는 살아 있는 것이라서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살아가는 행복만 놓고 따져 보아도 말이 없으면 어떤 인생도 즐거울 수 없다.

 

가족, 친구, 모임, 만남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은 말 즉, 대화이다. 음식은 대화의 즐거움을 확대시키지만 원천이 아니다. 말의 즐거움이 원천이고 부가적인 즐거움이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이며 인간은 그런 사회성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결국, 인간은 혼자 살지 못한다.
아니라고? 만일 지금부터 숲속에서, 무인도에서, 사막에서 홀로 나머지 인생을 산다면?

그래서 외로움은 말과 관련이 가장 깊다. 즉, 외로움의 원인은 대화의 파괴에 있다. 대화가 파괴됨은 감정이 파괴됨과 같다. 감정이 파괴되면 그 대화 상대가 힘들어진다. 소통은 없고 고통만 있다. 대화의 파괴는 인생의 파괴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성정을 키우는 방법을 꼭 배워야 하지만, 그보다 앞서 말의 신비함을 깨닫고 말의 즐거움을 배워야 한다. 대화, 즉, 말이 인생의 정답이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말이 기적이다. 대화가 인생의 정답이다.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것,
외롭다는 건 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건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건 마음의 즐거움이 없다는 것이다.

 

힘든 밥벌이 수단을 가졌으며 가정의 삶이 힘들어도 대화가 즐거우면 ,그 노동과 힘겨움을 지나기 부드럽다. 말은 기름칠이다. 행복한 가정이 성장의 원천인 이유는 가정에 웃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지간에도 외로운 이유는 행복한 정서인 대화의 즐거움이 없기 때문이다.

대화는 말의 내용에따라 악한 정서로 사람을 황폐시키지만, 또한 뜨거운 정서를 일으켜 보통 사람을 산처럼  성장시키기도 한다. 말에 의해 얼음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불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대화이다. 사람의 기쁨인 희망과 미래의 원천은 말 즉, 대화에 있다.

 

아픈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면 외롭다.
아파서 쓸모 없는 사람인 냥 모두에게 잊히다 보면 서서히 한계를 넘는다. 한계를 넘는다는 것은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림이다. 사람은 대화를 통해 기쁨을 얻어 산다. 사별한 부부의 첫 번째 고통은 대화가 없어진 것이다.  대화가 통하지는 않지만 그저 말이라도 할 사람이 있다면 쓸쓸하나마 외롭지는 않다. 사람에겐 사람이 있고 말이 그 사이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방에 혼자 있고 사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감옥 같은 어둠에 갖힌다. 밝은 말을 듣지 못해 우울해진다. 밝은 말은 해와 같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직장, 직업에서 만나는 사람과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작은 회사에서 모두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들 30대인데 나만 60대면 불편해 한다. 다들 기혼인데 나만 미혼이면 불편해 한다. 원래 불편한 것이 아니며 모두가 나이, 신분을 떠나 친구처럼 즐거울 수 있지만, 인간 습성 아니, 특히 한국 사회는 나이, 학벌, 재산, 자녀, 결혼, 차, 집, 외모, 직급, 직분 이런 것으로 사람을 분류한다. 


이런 것들은 대화의 파벌을 만들어 자연스러운 개인의 삶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런 것에 치인 사람들은 위축되고 소외되며 고립된다. 아직 말과 대화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을 못 만났을 뿐이지만, 본인이 먼저 말이 무엇인지 깨닫기 전에는 마음이 굳어 있다. 본인이 말에 대해  깨달은 만큼 자유가 얻어진다.

 

그걸 알고 있으므로 사람은 어떤 일에서든 그냥 자기 자신이면 된다. 남과 다르다고, 남만 못한 것 같다며 남의 폄하를 따라 자기를 격하시킬 필요 없다. 좋은 사람, 좋은 모임은 어디에나 있다. 다만, 스스로가 타인의 삶에게 짓눌리고 휘둘리지 않는 자기 자신이 될 때까지는 어디에서도 힘들다.

 

 어떤 생애통을 겪고 있든,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게다가 대화가 없는 사람은 경험이 적다. 적은 경험은 병이 되기도 한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풀면 딱 자기만한 크기의 좁은 시각으로 고립된다. 다들 행복한데 나만 힘들고 그렇다는  자괴감, 피해의식이 생긴다. 사람이 흔해 대화가 많아지면 경험이 많아진다. 지혜가 생긴다. 즐거움을 분별할 줄 알게 된다.

 

사람은 땅에 살며 땅에 사는 인간과 어울려 살도록 만들어져 있다. 혼자 살아도 되도록 만들어졌다면 각자 혼자 살아도 모두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모이고 싶다. 여럿이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다. 본능이다.

 

일, 공부, 취미, 참여할 만한 곳에는 대화가 있다. 말의 이해와 인생의 배움은 전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생긴다. 타인의 경험이 쏟아내는 말의 새로움, 재미, 통찰, 해학, 놀라움, 감동과 감화는 나의 새로운 말을 싹틔우고 자라게 한다. 즐거움과 지혜가 말로 와닿고 숙성된다. 말은 내 스스로 배울 수 없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배우게 된다. 인간의 즐거움은 대화에 속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