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신지 <저수지>를 내려다보는 권 씨 종가의 무덤들

좋은 환경
좋은 부모란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좋은 부모는 좋은 환경이다. 좋은 환경은 부유함이 아니라 좋은 스승이다. 무참히 말하자면 인생이 <나 자신 만들기>와 <나 자신의 인생 만들기>임을 아는 스승이다. 인생이 <나 자신의 인생 만들기>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에게서 보고 배우고 지도받아 자란 것이 대박 환경이다.
그렇게 해서 삶이 <나 자신 만들기>와 <나 자신의 인생 만들기>인 것을 자연처럼 접수한 사람이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나'라는 자기를 만나는 것이고, '자기의 인생'을 만드는 것인데, 생의 과정과 최종 결과물이 보여 주는 것은 딱 한 가지는 <만들어진 나 자신이다.>
나 자신 만들기의 종류 하나는 복근일 수 있고, 좋아하는 분야의 자격이나 위치일 수 있다. 학문의 체득, 가르치는 일일 수 있고, 깨끗한 도덕일 수 있다. 유머일 수 있고, 건전한 사회의 의로움일 수 있고, 돈과 권력, 쾌락일 수도 있다.
종류가 어떠하든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삶이 <나>의 <재창조 활동>임을 모르고 산다. 그에게 인생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모르는 채 죽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이든, 자기로 산다는 것은, 자기의 몸과 마음인데도 쉽지 않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가?
하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특히, 음악으로 치자면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말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 인생이 그렇다.
아는 사람, 즉, 인생이 <나 자신>과 <나 자신의 인생 만들기>라는 <재창조>임을 알은 사람이면, 남보다 앞서 자연스러운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지 못했지만, 늦게나마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이 좋다. 건강, 공부, 경제력이든, 평범하고 평화로운 삶이든, 통찰을 바라는 이해력, 진리의 갈구이든, 결국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나>를 통해 깨닫고 나 자신 만들기를 한다.
깨달은 만큼 자기 자신을 만든다.
몸을 만들든, 가족의 안정을 만들든, 기업을 만들든, 유머, 규모, 타인에 대한 사랑을 만들든.
가끔 멈춰 나를 보지 않으면 그냥 마냥 살게 된다. 그냥도 나쁘지 않다. 좋은 건 아니다.
재창조 활동은 동식물은 못 하고 인간에게만 주어진 과제이다.
인생의 결과물은,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만큼만 내가 만든 내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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