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신지 24년 11월

방황
사람은 마음이 불안할 때, 그것을 안정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이 지치고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할 곳이 없으면 방황하게 된다.
그런 때는 자아가 사라지는데,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부정 받는 속상함일 때이다. 가슴 속이 비어 있는 막연함일 수 있지만, 가슴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통증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극복하려 하지만 답을 못 찾는다. 그것을 극복하려면 나 자신과 세상에게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좋아할 줄 아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
자기가 자기를 싫어하면 세상도 나를 싫어한다.
느리고 못나도 자기가 자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버릇하면, 세상 압력에 견디는 힘이 생긴다. 견디는 힘이 습관 되면 극복하는 힘도 똑같이 자란다. 자아란 그렇다. 자기가 자기를 좋아할 줄 아는 마음이 자아가 좋아하는 본질이다. 자신이 지금은 바보 멍청이 등신이라 불리더라도, 자기가 자기를 좋아할 줄 알면, 잠시 후에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은 웃음을 품을 줄 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은 삶에 대한 명확한 바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명확한 목적이 없으면 중심이 없는 것과 같다. 애초에 그냥 살아갈 줄만 알고, 명확한 목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대충의 목적은 대충 사라진다.
그리고 검증된 진리를 받아들여야 생활에 중심이 잡힌다.
수천 년 동안 검증돼 내려온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 이건 진리의 진리이다.
여기에 더해, 좋은 음식이 진리 중의 진리이다.
영양분 섭취를 못 하면 힘의 재미가 없고, 침이 생성되지 않으니, 소화력이 떨어진다. 소화력이 떨어지면 소화불량, 위염, 장트러블 생긴다. 부조화로 생긴 염증이 위와 장에 많아지면 올라간다. 염증이 뇌로 올라가면, 분노하고 우울하고 예민해진다. 쉽게 체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혼란해진다.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은 먹을 것을 즐기러 이동한다. 먹는 것을 즐기러 갈 줄 아는 것처럼, 사소한 것이라도 행복한 것을 만들 줄 알고, 행복한 것을 즐길 줄 알아야 방황하지 않는다. 행복은 결코 작은 것부터 행복이다. 행복을 못 느끼는 사람은, 너무 넓고 높은 관 속에서 어둡게 살다 죽는 것과 같다. 행복하지 않은 인생을 계속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행복은 많다.
그중에서도 놀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아를 얻기에 최고로 좋다.
과학자들은 평생의 연구를 놀이처럼 즐거워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대화가 놀이이고 웃음이 놀이이다. 농담이 놀이이다. 운동, 노래가 놀이이다. 대화, 읽기, 쓰기는 만인의 기본적 놀이이다. 여행뿐 아니라 일 자체가 놀이인 사람도 있다. 어쩌면 놀이가 무엇인지 까먹었을지 모른다. 좋아하는 것은 놀이가 된다.
그 사람은 가끔 점심 식사를 식당에서 먹지 않는다. 도시락을 싸 왔거나 주문 포장하여 들고 가까운 공원 등지로 나간다. 물이나 산, 들판이 보이는 곳으로 간다. 햇볕 아래 높은 곳에서 너른 세상을 바라보며 먹는 시간을 즐긴다. 놀이이다.
가끔 이탈하는 점심 식사가 그에게는, 트인 세상을 보며 즐기는 놀이이다. 그날의 점심시간만큼은 은근히 기대되고 행복하다. 가끔 그를 따라간 사람은 덩달아 소풍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의 즐거움은 말한다. '꼭 점심을 식당에서 먹을 필요는 없지.' 옥상으로만 올라가도 신난다니까.' 그의 놀이처럼 하루에 자기만의 놀이 한 개쯤 있다면 행복을 만들 줄 아는 방법으로 좋다.
왜 방황할까? 굶주리는데, 먹을 게 없으면 방황한다. 행복이 고프면 방황한다. 대부분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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