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어렵냐 죽는 게 어렵냐?

6. 빈둥거림

itisyuwol 2024. 11. 9. 10:21

<사진 경산 24년 11월   유곡지, 유곡지를 바라보는 장승>

 

빈둥거림은 위험하다.

빈둥거림 또한 빈둥거림의 반복 훈련이기 때문이다.

심심하니까 영화를 본다. 음악을 들으며  발생한 사건, 사고  뉴스에 재미를 붙인다. 잡다한 세상 소식은 흥미진진하다. 인터넷을 두루두루 돌며 유혹하는 글과 영상에 빠졌다가는 돌연 ,관심 없는 듯 잊어버린다.

이것저것  섭렵하지만  이득은 없다.  결국 ,따분하니까 카페나 오가고, 자고 먹고 해와 달을 잊어 빈둥거린다.

그런데  몸과 마음은 그 빈둥거림을,  '반복하여 훈련한 정서'로  받아들인다. 특히, 그 시간을 행복한 정서로 기억한다. 왜? 빈둥거림은 나른하고 안락하니까. 평화로우니까. 마치 긴 휴가 같으니까.

그래서 빈둥거림은 나의 살던 고향이 된다.

열심히 일하던 중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과 마음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사람처럼 빈둥거림의 안락함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과감한 충동을 열망한다.

 

원래 몸과 정신이란 익숙한 것에 익숙하다.

부지런에 익숙한 사람은 부지런을 좋아한다. 부지런해야 맘이 편하다.

게으름과 빈둥거림에 익숙한 사람은 게으름과 빈둥거림을 좋아한다. 

누구나 익숙한 것, 거기에서 얻는 평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잘 살다가도 빈둥거림에 익숙했던 사람은 일과 직무, 의무와  책임에서 돌연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

 

핑계야  홧김이라지만, 핑계야 일이 힘들어서라지만, 핑계야 다른 무엇을 준비하기 위해서라지만, 핑계로야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지만, 마음속에서는 빈둥거림이라는 안락함과 평화를 그리워하는 것일 수 있다.

 

좀 덜 힘든 직장, 좀 더 편안한 무엇을 원하는 이유는 단지 빈둥거릴 기회나 건수, 빈둥거림에 안주하던 느긋한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목표가 없나?

목표에 대한 반복/훈련을 하고 있지 않다면, 자신도 모르게 빈둥거림을 훈련하고 있다. 

 

그런데 삶은 어렵다. 자신을 위해 추구해야 할 목표의 개수는 정하는 만큼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한 번에 한 개면 충분하다.

 

빈둥거림은 위험하다.

빈둥거림은 빈둥거림의 반복/ 훈련이기때문이다.

 

 

지금 빈둥거리고 있냐?  죽을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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