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경산 평산지 24년 11월>

몸이라는 최적화
과학과 의학, 심리학의 발전은 서로 만나 통찰을 이루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것들은 서로 다른 병이라 판단했었다.
그러나 발달된 지식은 융합하더니 도출해냈다. 그 놀라운 발견은,
치매, 파킨슨, 루게릭 등의 병인이 같다는 것이다.
그 병들의 기전은 우울증이다.
그런데, 열심히 책을 쓰고 학문만 연구하는 사람은 병에 든다는 옛말을 염두해야 한다. 뇌는 활동하지만, 육체가 활동하지 않는 삶, 그렇게 머리만 쓰는 사람의 근육은 흡사 '우울증 근육'이라 부르기 걸맞는다.
신체의 저활동인 '근육의 우울'을 포함한 이 우울증은 정신과 육체의 난치병이 된다.
굳어짐
살면서 즐거움과 감사, 기쁨에 노출되지 않는 사람일수록 기분과 감정은 굳는다. 기분과 감정을 담은 마음은 자신을 몸에게 그대로 전파한다. 근육은 마음으로부터 기쁨이 오기를 학수고대 하지만 한계 시간을 지나면 체념한다. 근육은 그리움에 사무쳐 매일 언덕에 오른다. 목을 빼 바라보지만 영영 보이지 않음에 낙담하여 망부가 된다. 망부석이 된 그리움과 같이 사람의 근육도 기쁨을 기다리다 굳는다.
연구 과학의 성장이 발견한 몸의 진리
고도화 시대의 과학과 의학, 심리학이 만났다. 옆 집에 살던 생리학이 놀러와 앉았다. 그들이 한 테이블에 앉자, 인체와 마음의 진리가 밝혀지는, 그야말로 인간이라는 지식이 진리를 발견한 시대가 되었다.
통합된 지식이 발견한 몸의 진리는 육체의 활동, 기쁨, 감사, 즐거움이다.
통계된 지식이 결론 내린 마음의 진리는 육체의 활동, 기쁨, 감사, 즐거움이다.
기쁨이 없는 마음은 굳는다.
마음이 즐겁지 않은 몸은 굳는다.
즐거우면 움직이고
즐겁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해서 어쩌면 인류가 알고 있던 어렴풋한 느낌이다. 사람은 모두 몸과 마음 안에, 잊고 사는 진리가 있으며, 그래서 진리를 갈구하는 욕망이 있다. 그렇기에 감사와 기쁨, 육체의 활동에 대한 속담과 격언이 역사와 함께 존재했던 이유이다. 인간은 끝없이 인간을 탐구한다. 그 결과가 도출되었다.
육체의 활동, 감사, 기쁨, 즐거움
몸의 최적화 개념은 밝혀졌다. 그러니 원리로 생을 채우는 것은 앎이 생긴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움이다.
인간 역사의 시냅스는 경험과 통계, 과학의 고도화로 밀집되더니 이 시대에 통찰을 얻었다. 육체의 활동(운동), 웃음으로 표현되는 기쁨, 감사. 즐거움이다. 몸과 마음의 진리는 이것이다. 다른 것이 없다.
지금 내가,
재미없는 인생이라는 타성.
우울함인지 모르고 사는 우울.
육체의 저활동인 근육의 우울함. 이런 상태라면, 다시 시작할 때이다.
작은 기쁨과 사소한 감사에 마음을 활짝 열기.
운동이라는 육체의 활동으로 활력 얻기.
즐거운 일을 찾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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