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여유지, 누워 자는 나무에 앉은 새 24년 11월>


우리의 뇌는 입 밖으로 뱉은 말을 자신이 들은 말과 똑같이 인식하는 기능이 있다. 이것은 뇌 과학이 밝힌 사실이다. 그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 남이 나에게 해준 말과 같다.
이 좋은 원리를 알고서 모른 척 살면 아깝다. 그래서 자연스레 '감사합니다.' 인사하게 된다. 그러다가 이런 경우를 만난다.
"야, 너는 늘 나한테 감사하다며,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들은 선량하고 부드럽게 사회생활 하려는 사람을 곡해한다.
'저게, 가진 게 없으니 착하게 보이려 애쓰네.'
아주 작은 것에도 굽신거리는 약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비딱하고 좁은 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감사의 분별
우리 집에서는 새로 산 빵이나 방금 들여온 과일 중 일부를 아래층,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드린다. 아래층 할머니는 출가한 자식들에게도 온전한 도움을 받지 못한다. 성격이 격렬하여 사람들과 잘 싸운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쩌다 우리 집으로 깻잎이나 상추를 가져온다. 농사지은 작물들이 제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가 주는 것은 받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썩어가는 채소들을 보며 버리기 아까운 생각이 들었고, 그나마 호의를 베풀어준 우리에게 주려는 것이다. 시커멓게 멍든 깻잎과 흐물흐물 시든 상추를 한 바구니 가져온다.
이 귀한 걸, 그냥 할머니 드세요.
그 할머니에게는 무엇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무엇을 주셔도 <감사합니다> 말하지 않고 돌려보낸다. 그리고 계시는 동안 음료와 간식이라도 대접한다. 안 그랬다가는 나중에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내가 그렇게 퍼먹였는데 나한테 이렇게 매정해도 돼야!"
5천 원짜리 티에 만 원짜리 바지면 만족하고 사는 두 아가씨가 있다. 그렇기에 어떤 사람들은 옷을 가지고 와 입으라 한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성격들이다. 모두 수십 년 동안 장에 박혀 있던 골동품들과 애써서 한 번 더 입고 버리면 족할 옷들이다.
아무거나 남이 주는 옷을 입는다 해도, 또한 아무 옷이나 막 입는 것은 아닌데, 그런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연발하는 순한 아가씨라면, 못 버린 옷을 티나게 입어 줄 거로 생각한다.
아가씨 중 하나는 옷 보따리를 받아 펼쳐 놓고는, 입을 게 없는데, 버릴 수도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된다. 결국 버릴 건 버리고, 조금 쓸 만한 것은 무엇이든 탐내는 사람에게 넘겨줘야 했다. 시간과 노동을 허비했고 골머리도 아팠다. 하지만 '내가 준 옷을 왜 안 입고 다니냐?'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좋은 변명 거리를 한참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감사를 연발하는 한 명의 다른 아가씨는, 진짜 감사가 무엇인지 알기에 전화를 받자마자 똑똑하게 말했다.
그거 아까워서 어떡해요. 나 말고 다른 사람 주세요. 나 그렇게 예쁘고 비싼 거 못 입어요. 명품, 그런 거, 나 안 입어. 나하고 안 어울려. 나는 비싸 봐야 몇십만 원짜리면 돼요. 언니한테 귀한 거, 나는 안 어울려요.
주려던 사람은 즉시 '아, 이 녀석이 내 맘대로 되는 녀석이 아니구나.' 깨닫는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연발하다가 쓰레기 물건과 말들, 쓰레기 정신을 받아 주는 창고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똑똑한 감사가 필요하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행복해 한다. 신비하고 놀라운 원리가 숨겨져 있는, 이 감사와 기쁨, 행복의 마음에는 똑똑함이 더해져야 한다. 진짜 감사한 마음의 원리인 기쁨과 행복을 총명하게, 지속할 수 있어하니까.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글을 올릴 수 있어 감사하고
이 행복한 시간들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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