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어렵냐 죽는 게 어렵냐?

31. 기준 어디에 뒀어?

itisyuwol 2025. 3. 20. 18:32

 

 

기준 어따 뒀냐, 너는?


개성 있는 사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경제력, 학벌, 외모 이런 거 따지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에 대한 기준이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력에 기준을 둔 사람은 경제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낮아지고 굽신거린다.
경제력에 기준을 두지 않는 사람은 경제력을 뺀 원래의 그를 본다. 또한 그의 경제력이 내게 어떤 혜택을 줄지도 몰라 반색하는, 숭배자처럼 굴지 않는다.
경제력에 기준을 둔 사람은 경제력의 숭배자이므로 그 앞에서는 겸손해진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달라진다.

허나 경제력에 기준을 두지 않는 사람은, 그에게  존중심은 존중심대로 가지지만, 그것은 가난하고 선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을 대할 때의 존중심과 다르지도 않다. 그렇기에 경제력에 기준을 두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경제력 숭배자의 부류가 아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당당한 사람을 싫어하는 부류도 있다. 사람의 천연스러움이 곤란을 불러오는 경우는 있다.

아무리 높은 위치에 다다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혼탁한 사람의 인생을 살며 파악한 분류 기준에는 역시 '천연의 인간'이 가장 좋다. 아부하는 사람은 천연의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필요하다. 도구로서. 그러나 천연의 인간도 필요하다. 친구로서.

이렇듯,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개성이기도 하고, 미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개성이 없이 순종적인 사람이더라도, 내 편이 있으나 없으나 미움의 대상이 되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누구나 이런저런 경험을 하듯이, 사유 없이 나쁜 눈으로 보는 인간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숭배 대상이 되는 것은 많다.
외모, 학벌, 지위, 신분, 계급, 권력, 명품, 반대로, 욕심 없는, 아무것도 숭배하기 싫은 인간도 있다. 날적부터 욕심이 없는데, 어떻게 경제력에 관심을 두겠는가? 경제력 대신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흔쾌히 많다.

경제력은 추구해야 한다. 삶이 돈으로 살아지기 때문에. 하지만 경제력을 숭배하면  인간 본연의 모습대로 살지 못한다. 돈이 내 종이어야 하는데, 내가 돈의 종으로 살며, 그것을 모른다.

반드시 벌어야 한다. 돈을 벌지 않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게으름이다. 하지만 그 돈을 기준으로 사람을 보면, 모든 껍데기와 만나야 한다. 천연의 인간을 만나려면 세상의 숭배 기준을 지우고 그 사람을 봐야 한다. 돈 번 자가 망하면, 주변에 사람이 남아 있던가? 대부분 그 사람보다는 돈을 만났을 뿐이다. 
돈을 주고 나면 자식조차 병든 부모를 버리는 일이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것이 사람 세상이다.

돈의 기준을 지우고, 천연의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천연의 사람을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행복하다. 가진 조건이 아니라 천연의 사람을 보는 사람은 자신부터 행복하다. 돈이 적더라도 순수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니까. 

이런 진실한 예도 많다.  돈이 많다고 해서 안 다치거나 안 아프거나 안 죽지도 않는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어 흔한 약초, 잡초를 먹고 병이 낫지만, 돈 많은 사람은 가장 비싼 병원을 전전하며 이 수술 저 수술받다가 죽는다. 이 또한 잡초만큼 흔한 일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가,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마음의 떳떳함과 불편함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