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어렵냐 죽는 게 어렵냐?

32.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 _(1)

itisyuwol 2025. 3. 23. 16:14

경산, 평산지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부정적인 정신, 부정적인 마음이  예민, 소심, 나약이다.


내가 나를 계속 비판하면,  세상에 대한 비판도 계속 중이다. 나는 곧 세상이다.
내가 나를 자주 비판하면  평소에 좌절, 낙담을  잘하는 사람이다. 내가 자주 낙담, 좌절하는 사람이면 별것 아닌 일에도 긴장과 예민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자기가 자신을 계속 비판하면 사람들의 표정, 불친절한 말 한마디, 웃음소리 하나에도 불쾌감과  조롱받는 느낌을 떠올린다. 본인이라는 이미지에 자기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들이 자신을 흉본다는 피해의식이 마음에 있다.

만일, 낯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장,
내가 피해의식이 있구나, 알아채야 한다. 그들은 그냥 자기들의 대화가 재밌어 웃는 것뿐이다.

 

자기는 잘났든 못났든 그냥 자기 자신이면 된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흠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게 완벽주의이며, 완벽주의자이다. 그 완벽주의는 예민, 나약,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 

흠결은 매우 상대적이다. 흠이 아닌 것을 흠이라 여기는 경우는 사람마다 다르다. 진짜 흠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게 이런 흠이 있어,  인정하는 사람이 편안한 사람이다. 그 흠이 고칠 수 있는 것이면 좋다. 만일, 고칠 수 없는 것이면,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다.


뛰어난 사람을 높게 평가하는 일은 당연 타당하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은 뛰어나지 못하다는 자괴감으로,

다른 사람들을 너무 높게 평가한다면, 자신은 자꾸만 흠을 쌓는 사람이 돼버린다. 아무것도 아닌 흠을 사채빛처럼 쌓고 산다.

 

완벽한 모습을 버리고  흠결 있는 자신을 존중하라.
나와 세상 둘 다 완벽할 수 없다.

 

스스로에 대한 비난판하

 

예를 들어, 어떤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비난하여 혼낸다. 그것을 늘 보며 사는 동네 사람들, 친족들이 그 아이를 존중할까? 존중하지 못한다. 아둔한 엄마는 자식뿐 아니라 자기 인생을 비난하는 줄 모른다.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을 비난하는데 어떻게 세상이 그 여자의 자식을 존중하겠는가? 그와 똑같다.

 

자기가 자기를 비하하는데 어떻게 세상이 그 사람을 존중하겠는가?
불쌍히 여길지라도 존중하지는 못한다. 불쌍히 여김과 존중은 별개이다.


지나친 피해의식은, 자신이 자신을 자주 비하하는 것에서 생긴다. 나약, 소심, 예민도 잦은 자기 비하에서 온다. 
잦은 자기 비하는, 스스로를 법정에 세우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판결받는 것이다.  지은 죄는 없지만, 모자란 죄를 지닌 "모자람의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모자란 사람, 나쁜 사람,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비판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듣는 이 세상이 과연 나를 존중할 필요를 느낄까?  내가 나를 계속 비하하면 세상도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


비판은 심판이다.

 

비판은  심판과 판결이라는 무의식적 선고를 포함한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선고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연예인에 대한 비판 기사를 보면, 나는 그 연예인의 참과 거짓을 모르고 평소에 상관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에서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말을 선고로 받아들이게 된다. 비판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삶의 방향과 방법이 많은 세상이다. 멋지게 되고, 밝아지고 훌륭해질 기회도 많다. 
살아보지 않은 생이 아직 남아 있음에도 일찍, 본인을 '못난이', '부족한 사람', '약한 놈'으로 심판할 필요 없다.

 

게다가, 자기비판이 계속되는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자기가 자기를 대하는 방식이, 자신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는데 어떻게 사람들 속에서 평등함과 자유함을 가지겠는가? 자기 자신에게 잘해야 한다.

 

하지만, 일 못하고 실수하고 잘못하면 혼나는 게 정상이고, 혼나는 걸 통해서 고쳐나가는 것이 인류의 학습 역사이며 바뀌지 않는 생육방식이다.  자기 자신에게 잘하라는 것은, 비판과 비난, 훈계, 책망, 그 밖의 시련이 왔더라도 거기에 맞추어 자신의 인생을 못난이, 무능자, 폐인, 범죄자로 비하, 낙인찍지 말라는 뜻이다.

 

특히, 자기가 자신에게 그럴 필요 없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누구나 조금씩 죽는 날까지 어른이 되어 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