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어렵냐 죽는 게 어렵냐?

50. 웃음과 닮은 것들

itisyuwol 2025. 8. 24. 12:50

<사진 경산 연지 25년 6월>

 

사람은 꼭 웃음만으로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몸동작은 웃음처럼 활기를 꺼내준다.

뭐가 있을까?

춤, 신비로운 예술? 단순히 100미터 선수의 뜀박질만 보아도 우리의 의식은 아프리카의 평원, 그 위를 달리는 영양의 활력을 느낀다. 역동! 역동은 살아있음의 표현이다.

 

그래서 깡충깡충 뛰는 강아지만 보아도 사람은 즐거워진다. 즐거워하는 생명체에서 즐거운 기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은 어떤 종류로든 움직이는 동작을 익힐 필요가 있다. 농구선수의 큰 키와 축구선수의 두꺼운 허벅지, 승패를 가르기 위한 그들의 움직임은, 팔딱거리는 횟감 살아있다는 것의 신비한 기력을 전달해 준다.

 

그런즉슨, 몸동작에 생기를 채울 필요가 있다. 생기 있는 동작은 사람에게 기억된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서 감동적 생기를 느낀다. 움직이는 생명체로 살아 간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즐거움이며 축복이다.

 

쾌활한 동작에는 춤과 운동만이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에 보이는 움직임과 자세, 코미디언들의 유쾌한 행위도 눈을 이끈다. 마임이나 행위예술에서 보이는 표정도 웃음의 한 종류처럼 생기라는 신선함을 전달한다. 살아있음이다. 사람들은 생기 있는 곳으로 모인다. 

 

레크리에이션은 웃음 치료가 아니면서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웃긴다. 노래하고 춤추고 게임하며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벌칙을 받아 자지러진다. 웃는다. 그냥 그렇게 노는 재밌는 놀이이다. 천진한 아이시절로 돌아가는 본연의 즐거움, 그래서 행복한 가정은 웃음이 끊이지 않고 아이의 재롱과 부모의 장난이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기분 좋은 모임에서 느끼는 신나는 시간과 같다. 그것이 다 레크리에이션의 한 종류이다.

 

웃음을 닮은 활동력에는 생활의 기쁨이 있다. 기쁨은 삶이 좋다는 뜻이다. 기쁨은 살아가고 싶다는 의미이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느끼는 유쾌함이다. 깡충 뛰는 강아지만 보아도 우리는 유쾌해진다. 모든 품위, 남다른 품격의 자세와 마음을 버리고 깡충거리며 즐거운 인생으로 사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겸손이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신처럼 되려는 것은 악한 짓이다. 인간은 즐거운 마음과 활동으로 유쾌하게 살도록 만들어진 땅에 사는 인간일 뿐이다.

높은 사람이 되려는 행위, 신처럼 되어 숭배받으려는 욕망, 자신은 특별하니 남을 지배해야 한다는 사악한 욕망, 평등하지 않아 모셔야 하는 사람일랑 되지도 말고, 혹여 있다면, 그런 이기적인 치들에게서 벗어나 평등한 인간의 자유와 유쾌함을 누리며 사는 게  인간 본래의 일이다. 

 

양반처럼 산다는 것은 품격, 말투, 표정 자세가 고상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양반처럼 산다는 것은 충성을 지켜야 할 때에 충성을 지키는 것이다. 의리를 지켜야 할 때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지조를 지켜야 할 때, 정조를 지켜야 할 때, 절제해야 할 때, 용감해야 할 때, 양보해야 할 때, 의로워야 할 때, 예의를 지켜야 할 때, 그때마다 그 필요한 것을 지킨다는 뜻이지 항상 고상반듯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古無士大夫皆民也 고무사대부개민야,

옛날에는 사대부가 없고 다 평민이었다.

 

조선 후기 최고의 서적인 택리지 첫 줄에 나오는 명문인 이 글줄은 진실이고 진리이다. 조선시대를 산 선비들도 인간은  원래부터 모두가 평민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웃음을 찾아 웃고, 웃음을 만들어 웃고, 때로는 웃음과 닮은 몸동작으로 사는 것이 사람이 땅에서 제대로 즐겁게 사는 것임에 진리이며 더 추가할 게 없다.